지금의 보안1942자리에는 원래 양옥집과 한옥집이 한 채씩
있었어요.
보안여관까지 3개의 입지를 사서 하나의
문화예술공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.
보안여관이 지금의
이런 보안여관인줄 모르고, 단순히 오래된 건물인 줄로만
알고 있었죠. 그 당시 검색창에 보안여관을 치면 그냥
‘여관’으로 나왔어요.
대실인지 숙박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
1만 5천 원쯤 하는 그냥 오래된 여관으로요.
그런데 새 건물
설계를 하는 시기에 비가 와서 건물을 보수해야 했고,
그
과정에서 보안여관이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.
제가 일본식 적산 가옥에서 태어나 자랐거든요. 그 순간 ‘이건
내가 허물 수 있는
건물이 아니구나. 허물면 큰일나는
건물이겠구나’ 직감했죠.
그 후 보안여관 기록을 찾아보니
1936년 서정주 선생이 머물며 초창기 문학동인지
‘시인부락’을
만든 장소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. 보안여관이 한국 근대문학의
정체성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대로 보존하게 된 겁니다.